검은
출판물 정보
PERIGEE ARTIST #33 박미나
작가: 박미나
디자인: 장윤아
페이지수: 64p
제작연도: 2024. 2. 23.
필자: 신승오
후원: (주)KH바텍
발행처: (주)KH바텍
작가소개 & 출판물 소개
박미나(b. 1973)는 회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선과 색, 언어와 기호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헌터 대학, 뉴욕 시립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주요 전시로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2023), 개인전 《집》(원앤제이 갤러리, 2023), 《아홉 개의 색, 아홉개의 가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2023), 《꿈의 상상》 (서울상상나라, 2023), 《200579》(갤러리 씨엔, 2022),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겹쳤을까?》(시청각랩, 2020) 등이 있다. 《데코 데코: 리빙룸 아케이드》(일민미술관, 2023), 《정물도시》(세화미술관, 2023), 《시적 소장품》(서울시립미술관,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 소장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perigeegallery,
https://www.perigee.co.kr/gallery/exhibitions/view/2024/305
《검은》은 크게 세 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집니다. <Black Pens>은 시판되고 있는 검은색 펜을 최대한 수집하고 이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 용지에 일률적인 간격으로 그어 나간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작업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498개의 드로잉 밑에는 펜의 상표와 고유번호가 적혀있고, 작가는 이를 따로 목록화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2014-Black>은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검은색 유화물감을 수집하고 27.3×27.3cm의 정방형의 화면을 온전히 칠해 55개의 검은색 면을 만들었습니다. <2014-BGORRY>, <2024-BGORRY> 두 작업은 픽셀의 크기가 다를 뿐 6가지 색을 픽셀 하나하나에 채워 넣어 검은색을 색 분해해 놓은 것 같은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Black Pens> 연작을 보면 여러 회사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펜을 사용해 검은 선들을 그은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에서 어떤 집착이 느껴집니다. <2014-Black>에 사용된 유화 물감은 모두 검은색이지만 하나하나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2014-BGORRY>, <2024-BGORRY>에 사용된 여섯 가지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됩니다. 여러 유채색이 섞인 검은색은 색상과 비율의 정도에 따라 모두 다른 검은색으로 생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시판되는 무채색의 검은색과 유채색으로 만들어진 검은색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럼 우리는 무엇을 검은색이라 지칭하는 걸까요? 다시 생각을 돌려 우리 주변에 관습적으로 생겨난 검은색의 의미를 떠올려 보면 검은 옷은 단순하고 중후한 느낌, 사제들의 권위, 죽음에 대한 애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오방색으로서 북쪽의 방위를, 검은 까마귀와 고양이는 불길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대입하면 검은색은 흑인을 비하하는 차별의 단어로도 사용되고, 마음이 사악한 것을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다양한 의미들로 이루어진 검은색은 무엇인가 결정되지 않은 미지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작가는 검은색을 모든 것을 무(無)로 돌아가게 하는 어둠인 동시에 그 심연에 숨겨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것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미나의 이번 전시는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읽어내는가에 따라 그 의미를 다양하게 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을 넘어선 새롭고 낯선 이야기를 관객들이 찾아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시면서 작가가 설정한 규칙과 범주에서 시작해 검은색 그 자체의 의미와 작가의 수행적인 행위에 이르는 여러 요소를 하나씩 더듬어보는 적극적인 읽기를 시도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글 신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