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지층
출판물 정보
PERIGEE ARTIST #40
작가: 김준
디렉터: 신승오
큐레이터: 모희
디자인: 장윤아
페이지수: 88p
종이: 몽블랑 90g, 랑데뷰 울트라 화이트 210g
제작연도: 2026. 5. 18.
후원: KH바텍, 서울문화재단
발행처: KH바텍
작가소개 & 출판물 소개
김준(b.1976)은 지질학적 연구와 음향 생태학을 바탕으로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탐구하는 사운드 아티스트이다. 그는 인간의 가청 범위를 넘어서는 소리와 전자기적 신호, 환경적 공명을 물리적·전자적 방법으로 채집하고, 이를 아카이브와 가변적 설치 형태의 사운드스케이프로 재구성한다. 대표작 〈피드백 필드〉(2012)는 통일 이후 독일의 역사·사회적 맥락과 산업 구조에 대한 현장 리서치에서 출발했으며, 비가시적 음향 현상이 환경과 신체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준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청각의 시각화’로 정의하며, 소리를 매개로 장소성, 기억, 시간의 층위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연구 기반의 예술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에코 로그: 자연의 시간》(2025, KAIST미술관), 《고요의 울림》(2025, 북촌문화센터), 《감각의 저장》(2024, 백아트), 《템페스트》(2022, 송은), 《상태적 진공》(2018, 다시세운광장) 등이 있다. 또한 《미술관을 기록하다》(2025, 성곡미술관), 《다시 지구, 다른 감각으로 응답하기》(2025, 서울시립미술관), 《공유지》(2024, 문화비축기지), 《우리가 바다》(2024, 경기도미술관), 《공중정원》(2023,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도시공명》(2022,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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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발리와 롬복 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작가가 관심이 있는 환태평양 조산대와 월리스 라인이 교차하는 화산 지대입니다. 그는 활화산의 진동과 같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을 울리는 태초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이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보니 원래 계획했던 이 지역에서 채집하려는 소리보다는 점점 더 지역적 특색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물리적 진동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종교적 소리가 혼재된 상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그가 채집한 소리에는 새벽에 빛과 함께 깨어나는 자연의 벌레 소리가 들리다가, 그 소리에 이어 겹쳐서 들리게 되는 종교의식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에 갑자기 내리는 빗소리처럼 너무나 일상적인 소리가 뒤따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에서 벗어나 최대한 그가 머물렀던 바로 그 시공간의 감각을 조화롭게 채우고 자극했던 소리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그것을 기계장치에 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내부에도 온전히 담아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계에 담긴 소리보다는 자신에게 들어온 소리 그 자체입니다. 하늘과 땅, 새와 식물, 제단과 꽃, 비와 바람, 낮과 밤, 산과 바다, 힌두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와 하나의 시간과 장소에 서로 만나 겹치는 장면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소리가 결합한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김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이야기하는 성스러움은 종교적인 엄숙함이나 자연이 주는 숭고와 같은 감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일상적인 소리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런 일상적인 소리의 성스러움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건드리고 다듬지 않은 원석과 같은 소리 다시 말해 이미지화되어 있지 않은 태초의 소리를 깊게 탐색하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작가가 이번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성스러움은 그것을 듣는 자가 들리는 소리에 깊이 물들어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제시됩니다. 이는 마음을 하나에 지점에 집중하여 내면으로 침잠하는 명상의 상태와 유사합니다. 이 명상적 태도는 처음 낯선 소리를 듣는 어색한 그 시간을 지나 온전히 소리에 대한 감각으로 채워지는 ‘나’만의 듣기에 다다르도록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와 공명하는 순간 우리는 작가가 의도하는 성스러움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쁜 삶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작가가 들려주는 소리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글 신승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