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울한 귤
출판물 정보
PERIGEE ARTIST #37
작가: 돈선필
글: 신승오, 돈선필, 강주홍, 모희
디자인: 장윤아
페이지 수: 108p
종이: 아트지 150g, 그린라이트 80g
제작연도: 2025. 5. 15.
후원: KH바텍
발행처: KH바텍
작가소개 & 출판물 소개
《음울한 귤》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 제목을 차용한 것입니다. 작가에 의하면 이것은 또 다른 소설 속 상상의 책 제목을 빌려서 언어 유희로 만든 합성어로, 번역의 과정에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번역가의 오역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각주로 달아 수정해 번역하긴 했지만, 이미 뭔가 어색한 단어는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와 같은 번역의 오류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동시에 그는 특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재료와 기술의 문제, 그리고 경제적 수지 타산과 같은 요소가 혼재된 의도적, 우연적, 필연적 오류로 나타나는 가면, 슈트, 괴수의 몸체, 도심 공간과 같은 물성을 가진 대상의 어긋남을 호기심 어린 태도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하는 것을 생생한 디지털 이미지로 실현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눈앞에 만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양가적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시대착오적인 특촬에서 나타나는 여러 요소들이 번역의 오류와 같은 선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번역의 오류나 특촬의 오브제들은 온전히 그 의미를 담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한계를 의미하기보다는, 그러한 기묘한 상황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의 신선함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시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자극, 흥분, 충동은 전혀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확실하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가 인과적인 선형적 구성이 아닌, 전시장이면서 끽태점(喫態店, Kitsutaiten)인 동시에 특촬의 작업실 혹은 수장고와 같이 느껴지는 병렬적 방식의 전시장을 구성한 것은 여러 연상 작용을 한꺼번에 제시하여 관객들의 관심에 따라 서로 다른 접근이 가능한 시공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결국 돈선필의 전시장은 특촬과 같이 하나의 원형으로부터 무언인가 나타나 그것이 어딘가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로 펼쳐진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작가가 전시에서 제시하는 것은 온전한 하나로 귀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실체를 가지게 된 존재입니다. 전시에서 작가는 지금까지 그와 함께 만들어졌고, 우리의 눈을 자극하기를 반복하는 그의 조각, 영상, 글, 수집한 물건과 책으로 우리를 기존의 세상에서 미끄러지도록 재설정하려 합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는 익숙하고 누구에게는 낯선 대상이 가득한 전시를 감상하시면서 새로운 시각이나 이야기의 단서를 발견하시고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perigeegallery
https://www.perigee.co.kr/gallery/exhibitions/lists
돈선필(b.1984)은 서브컬처라 불리는 문화 전반에 대한 애정을 비평적 도구로 사용하여, 언어와 사회의 모습을 ‘구현화(materialization)’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주요 개인전으로 《Electronic Tomb Raider》(2024, 국제전자센터, 서울), 《인더스트리얼 미소녀》(2023,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괴 • 수 • 인》(2022, YPC스페이스, 서울), 《Cats on Mars》(2021, 쿤스트할 오르후스, 오르후스, 덴마크), 《Portrait Fist》(2020, 아트선재센터, 서울) 등이 있다. 또한 《아트스펙트럼 드림스크린》(2024, 리움미술관, 서울), 《Natural Born Odds》(2023, 살리하라 아트센터,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Fake it Real》(2022, 대만디지털아트센터, 타이페이, 대만), 《땅속 그물 이야기》(2022, 아르코미술관, 서울), 《조각충동》(2022,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3년 제1회 서울예술상 시각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