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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멘 Green Men

작가 : 박형지
글 : 이성휘
디자인 : 박연주
사진 : 정희승
발행처 : 헤적프레스
페이지수 : 44p
제작년도 : 2018

*본 콘텐츠는 인쇄물이 아닌 플랫폼 내 뷰어를 통해서만 열람할 수 있는 전자책입니다.

작가 소개

박형지는 회화작업과 함께 회화에 관련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출판물 소개

*<그린멘>은 2018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 <그린멘>에 전시된 작품이며, 열네 개의 이미지와 일곱 편의 글이 열네 권의 책에서 순환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각 권이 열네 개의 이미지와 한 편의 글을 담고 있는 출판물과 달리 웹 버전은 열네 개의 이미지와 일곱 편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보여준다.

열 넷, 열 넷의 그린멘 그리고 일 곱개의 편지
송고은(통의동 보안여관)

<그린멘>(Green Men)은 이천십팔년 칠월 십오일 부터 팔월 칠일까지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박형지의 개인전이다. 그리고 <그린멘>은 각 각 엽서 크기 정도 부터 높이 약 이 미터의 캔버스에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하여 그린14점의 회화 연작이다. 한편, <그린멘>은 비슷한 이야기를 7명의 다른 수신인에게 쓴 편지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그린멘>은 7개의 편지 중 하나와 크기가 다른 14 점의 회화 연작을 가로 이백사십, 세로 삼백십오 센티미터안에 넣은 각기 다른 14개 버전의 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린멘>은 <그린멘> 자신이자 그 스스로의 분신이 된다.
당신이 지금, 마주친 그린맨이 궁금하다. 하지만 사실 어떤 그린맨을 마주했다 할지라도 그를 통해 박형지가 묻고자 하는 질문은 (거의)같다. 이 프로젝트는 회화가 사진을 거쳐 인쇄 등 다양한 매체로 이미지화 될 때 원본의 실질적 물성이 축소와 확대, 굴절과 변형을 이루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또한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더욱 흐릿해지는 세계에서 회화에 대한 우리의 오랜 종교, ‘역시 그림은 실제로 봐야합니다’라는 믿음에 대해 반문한다. 이런 질문들은 미술의 역사에서 줄곧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 새삼스러운 질문이 여기서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이를 접근하는 흥미로운 형식에 있다. 작가는 매체에 따른 원본의 변화에 기꺼이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그래픽디자이너 박연주와 최근 ‘회화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고백하는 큐레이터 이성휘를 이 질문의 또 다른 화자로 초대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발현된 소기의 결과물은 전시장에서 서로를 부인하거나 흉내 낸다. 그러나 섣부르게 하나의 결론으로 매듭짓지는 않는다. 대신, 복제와 재현에 관한 또 다른 갈래를 만들어 낸다. 어쩌면, 여기서 보여지는 과정은 모든 이미지와 경험, 물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상일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가 지난 2017년 네덜란드(AiR Sandnes) 와 노르웨이(AiR WG)의 레지던시에서 시작한 작은 초상화에서 출발되었다. 박형지는 회화가 갖는 물질성의 변형과 또 이에 대한 수용의 태도 묻기 위해 정체불명의 그린멘을 등장시켰다. 여기서 <그린멘>은 특정한 인물을 의식하거나 내러티브를 생성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모호한 인물을 통해 회화적 제스처를 강조하고 캔버스의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표면 자체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일 뿐이다. 실제로 이 동일한 이미지는 14번의 반복된 횟수에 따라 변화되는 캔버스 위의 물감 두께, 붓질의 망설임과 단호함의 차이들을 더욱 유심히 관찰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이런 형식적 접근은 이성휘가 쓴 7개의 편지 형식과 닿아있다. 이 편지는 회화를 다시 언어화 시킨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의심과 큐레이터로서 갖는 회화 매체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담고있다. 편지는 각각 아빠에게, 친구에게, 소설가에게 심지어는 AI 등에게 발신된다. 이렇게 수신인에 따라 같지만 다른 7개의 편지는 박형지의 회화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책의 도판이미지를 회화 연작 중 가장 작은 작품과 1:1의 비율로 크기를 맞춰 박연주가 디자인한 책과도 연결된다. 14개의 그림 이미지와 1개의 편지로 구성된 책은 미묘하게 다른 14개의 버전으로 다시 재조합 된다.
보통 회화 작품은 가장자리가 매끄럽게 다듬어진 완전한 평면 이미지로 재생산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약 4cm의 두께를 가진 직육면체의 입체인 동시에 그 표면을 이루는 물질은 감상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회화를 ‘본다’는 것은 그 실체를 영접하는 것 외에 재현된 이미지의 표면을 다시 해석하고 오역하는 경우의 수를 포함한다. 이제 더 이상 회화에 대한 상징주의적 해석이 유효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회화의 형식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회화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공간을 제한하는 일일 수 있다. 회화는 그것이 어떤 이차원의 장소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를 그 앞에 서성이게 한다. 다시, 여기 <그린멘>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 <그린멘>의 성지가 된 화이트 큐브에서 14점의 그린맨들과 14권의 그린멘 또 그에 상응하며 순환된 7개의 편지들을 다시 어떻게 수축되고 확대 될까?

*이 글은 <그린멘>의 전시를 앞둔 이천십팔년 칠월 일일에 쓰여졌다.